요즘 개발자로서 조금 복잡한 마음이 듭니다.
AI가 코드를 작성하고, 시스템을 설계하고, 심지어 사람 대신 여러 가지 작업을 수행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20년이 넘도록 개발자로 살아오면서 수많은 기술의 변화를 경험했지만, 요즘처럼 기술의 변화가 한 사람의 삶과 존재의 의미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시기는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해킹 사태들을 보면서도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는 개발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Railway에서 보안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AI 관련 서비스의 API 키와 각종 비밀 정보들이 공격의 표적이 되었고, AI를 이용한 공격은 점점 더 빠르고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사용하는 개발 도구와 프레임워크, 클라우드 서비스조차 더 이상 당연히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AI가 개발자의 능력을 확장해 주는 놀라운 도구라는 사실에 감탄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금 두렵기도 합니다.
20년 넘게 개발을 해왔습니다.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고민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AI가 그동안 내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지식과 기술을 순식간에 따라잡거나, 어떤 영역에서는 이미 나보다 훨씬 빠르게 일을 해내는 모습을 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달려왔을까?
내가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과 지식은 앞으로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어쩌면 내가 익숙하게 살아온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의 자리가 조금씩 작아지는 것은 아닐까?
개발자로서의 자부심과 새로운 기술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만큼, 이런 변화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소외감도 솔직히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런 고민이 개발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할수록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더 많이 알아야 하고,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하고, 다른 사람보다 앞서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렇게 평생을 달리다가 정작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는 잊어버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면서 저는 아이들에게 물려줄 것이 많지 않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에게 자주 강조하는 이야기는 따로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어떤 상황을 받아들이는 방식, 그리고 자신에게 닥친 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절망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같은 어려움 앞에서도 누군가는 주저앉고 누군가는 그 안에서 배울 것을 찾습니다.
우리가 모든 상황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그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조금씩 배워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예전에 여행하면서 경험했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새벽의 공원을 걸었던 기억입니다.
차분한 공기, 조용한 거리, 천천히 밝아오는 하늘.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무언가 대단한 것을 본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이 참 좋았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느낌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 보는 풍경이라 내가 느꼈던 그 감동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반대로 지금 내가 매일 새벽에 걸어서 출근하는 길도 그렇습니다.
늘 걷던 길, 늘 보던 공원,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조용한 거리와 차분한 공기.
나는 매일 보는 풍경이라 별생각 없이 지나치지만, 어쩌면 이곳을 처음 방문한 여행자는 그 길을 걸으며 참 좋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같은 풍경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이 되는 것입니다.
최근 2~3일 동안 몸살로 고생하다가 오랜만에 잠을 푹 잤습니다.
그리고 오늘 새벽, 개운하게 눈을 떠서 다시 평소처럼 걸었습니다.
늘 걷던 길인데 오늘은 유난히 좋았습니다. 몸이 조금 편안해지고 마음이 가벼워졌을 뿐인데, 익숙했던 풍경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특별히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세상이 갑자기 좋아진 것도 아니고, 내가 안고 있는 고민들이 해결된 것도 아닙니다. AI의 발전이 멈춘 것도 아니고, 앞으로 다가올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그저 잠을 푹 잤고, 몸이 조금 나아졌고, 새벽 공기를 마시며 걸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좋았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놓치고 사는 행복이 바로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많은 것을 얻어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곁에 있는 것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을 때 느끼는 행복 말입니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우리가 더 많은 지식을 갖게 되어도, 세상이 아무리 편리해져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살아가야 할 하루하루가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몸의 상태를 느끼고, 사람들과 만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때로는 걱정하고 때로는 웃으며 살아가는 하루입니다.
기술은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능력의 의미도 바꿀 수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상당 부분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것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사람입니다.
좋은 공기를 마시며 기분이 좋아지고, 누군가와 나눈 따뜻한 말 한마디에 위로를 받고, 오랜만에 몸이 편안해진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AI를 활용하고, 더 나은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개발자로 살아온 지난 20여 년이 무의미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이제는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는 것만큼이나, 그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지도 중요하게 생각하려 합니다.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가보다 내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는가.
무엇을 얼마나 더 갖게 되었는가보다 내가 이미 가진 것에서 얼마나 많은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가.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앞서 있는가보다 내 삶을 얼마나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어쩌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얻는 일이 아니라,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를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침, 늘 걷던 길을 걸으며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기술은 계속 발전할 것이고 세상은 앞으로도 빠르게 변하겠지요. 내일은 또 어떤 변화가 우리를 놀라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오늘대로 살아가면 되겠습니다.
좋은 공기를 마시고, 몸을 돌보고, 주변 사람들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익숙한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을 발견하면서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결국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즐거운 휴일입니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분들이 잠시나마 여유를 느끼고, 평범한 하루 속에서도 작은 행복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두 행복하게 보내세요. ^^ 😀 😃